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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자: 2019/10/26  영남신문
궁정동 사람들
직속상관에 대한 충성심이 투철했고 의리를 다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다.

1979
1026일 저녁 740분경 대통령 각하 만찬장소인 서울 종로구 궁정동 소재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아주 특별한 일이 벌어졌다.









유신의 종말을 고한 총성이 울렸던 궁정동 안가. 이 날 거사에 참여한 두 사람..

 박선호 의전과장, 박흥주 수행비서관 의 이야기이다.

   

그날 오전 박정희 대통령은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했다.

행사를 마치고 헬기를 타고 오면서 반듯하게 정리된 농촌의 경지를 본 대통령은 이날 무척 기분이 좋았다. 대통령은 서울 상공에 와서도 한 바퀴 돌도록 했다. 마치 본인이 이루어 놓은 한강의 기적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박정희는 이 날의 농촌 나들이로 무척 좋아진 기분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청와대 안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직원들이 다 퇴근하면 절간처럼 적막해지는 청와대.

   

박대통령은 연회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그 날 오후 4, 김재규는 남산 본부 집무실에서 차지철 경호실장의 전화를 받았다.

오늘 저녁 6시에 궁정동에서 대행사가 있습니다.” “알았소

대행사라고 하면 대통령, 중앙정보부장, 비서실장, 경호실장이 참석하는 술자리다.

   

이러한 행사가 있으면 중앙정보부 박선호 의전과장이 하는 일은 술자리 시중을 들 여자를 데리고 오는 것이었다. 말이 의전과장이지 한마디로 조선 연산군 시절 전국에서 여자들을 차출하여 연산군한테 갖다 바치는 채홍사역할이었다.












박선호는 대학생 딸을 둔 부모로서 괴로움이 너무 컸기에 사직하고 싶다는 뜻을 평소 몇 번 비친 적이 있었다. “부장님, 이 일은 해병 대령 출신의 사나이가 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박과장, 자네 말이 맞아. 나도 부끄러워. 하지만 자네가 못한다면 이 일은 내가 해야 해. 조금만 참아주게.“

 



이 날 김재규와 함께 애꿎은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는 두 부하 중 한 사람인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박선호.








박선호는 1934년 경북 청도읍에서 출생해 대구 대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병간부후보 16기생으로 해병 소위로 임관된 이래 해병 제3여단 3대대장을 등을 지내고, 197310월 해병 대령으로 예편했다. 그 후 19788월부터 중앙정보부 비서실 의전과장으로 근무해왔다.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이라는 자리는 주로 대통령 각하의 행사 지원이다.












그런데 이 행사라는 것이 사실은 술자리와 각하의 사적인 유희를 가리킨다. 대통령의 행사는 소행사와 대행사로 나뉜다. 소행사는 각하와 젊은 여성이 간단한 만찬 겸 술자리를 갖고 나서 잠자리를 하는 것이고, 대행사는 대통령, 중앙정보부장, 비서실장, 경호실장 등이 참석해서 두어 명의 여성을 데리고 술과 여흥을 즐기고, 여흥이 끝나면 대통령은 점찍은 여자와 잠자리를 갖는 걸로 마무리된다. 당시 이런 행사가 사흘에 한 번, 한 달에 열 번 가까이 있었다.











박선호는 1978811일부터 의전과장으로 근무한 이래 19791026일까지 15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하루도 쉬지 않았다. 그는 궁정동에 있는 5개의 연회장을 관리하고 중정부장을 보필하는 비서 역할도 해야 했다. 언제 어떤 지시가 내려올지 몰라 정초나 추석은 물론이고 공휴일에도 매일 출근 했다. 김재규 부장을 잘 보필한다는 일념에서 나온 성실함이었다.

 

그 날 오후 440분경 김재규와 수행 비서관 박흥주는 이곳 안가에 도착했다. 궁정동 안가는 청와대로부터 약 5분 거리.











박흥주는 궁정동에서 가까운 세종로로 갔다. 구두를 사기 위해서다. 김재규가 외부 일정 없이 잠시 집무실에서 쉬는 동안 구두 쇼핑을 허락 받은 것이다. 김재규 부장은 새벽에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하기 때문에 박흥주는 거의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그는 왼발에 무좀이 심했다. 동료들이 밑창이 종이로 된 구두를 신으면 무좀이 더 심해진다고 해서 비닐창을 깐 구두로 바꿀 생각이었지만 시간을 낼 수 없어서 미루던 참이었다. 박흥주는 새 구두를 사 신었다.

 

이 날 함께 거사에 참여한 김재규의 두 부하 중 또 다른 한 사람 박흥주.









박흥주는 1939년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출생했다. 8.15 광복 전인 두 살 때 부모가 충남 금산으로 월남했다. 서울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육군사관학교 18기로 입교했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강원도에 있는 6사단 77포병대대에 근무하다 중위로 진급하면서 6사단장 김재규의 전속부관으로 근무하게 됐다.










그의 상관인 김재규는 업무적으로도 깔끔했고 인간적으로도 아주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그때부터 김재규를 존경하게 되었다. 19693월 김재규가 보안사령관으로 있을 때 506보안부대 수경사반장을 지내는 등 그 후에도 김재규와 깊은 인연을 맺었다.










육군본부에서 팀스피리트 육군 담당 장교로 복무하던 박흥주는 197841일에 국방부의 명령으로 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관으로 임명됐다. 그는 중앙정보부보다는 일선 부대가 체질에 맞았지만 김재규 부장을 모시는 일이기에 기꺼운 마음으로 달려왔다.

    

그 시각 궁정동 요원들은 여느 연회 때와 마찬가지로 경기도 고양시 신도면 원당읍에 있는 원당 양조장으로 가서 막걸리 석 되를 사 왔다. 최근 들어 대통령은 주로 양주를 많이 마셨지만 언제 막걸리를 시킬지 몰라 준비를 하는 것이다










또다른 운전기사 유성옥은 동대문 시장 등을 돌며 장을 봤다. 전복, 장어, 갈비, 송이등 당시 돈 6만원어치 가량의 안주용 재료를 구입 했다. 궁정동 안가 요리사 김일선은 각하께서 특별히 잘 드시는 거 없어요. 대게 콩나물밥 같은 거 잘 드시고 술안주로는 멸치 대가리 떼고 참기름에 볶아 드시는 걸 제일 좋아 하셨어요.” 김일선은 부지런히 요리를 시작했다.

   

이 시각 김재규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저녁 안가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자고 제안한다. 이 전화는 두 사람의 운명뿐 아니라 이 나라의 진로를 바꾸어 놓는 중대한 인연을 만든다. 이 전화는 10.26에서 12.12 사건으로 이어지는 드라마의 무대가 되었던 것이다.

 

한편 박선호는 각하의 술자리 시중을 들 운명의 두 여인. 가수 심수봉과 영화배우 지망생 신재순을 데리러 내자 호텔로 향했다.

 

그 시절 대한민국 사회는 유신과 긴급조치에 의한 극심한 질식 상태에 놓여있었다.

유신 독재는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미국과는 인권, 주한미군 철수, 핵개발 등으로 극한 갈등을 빚고 있었다. 18년 장기집권으로 인한 불만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김재규는 부산에 내려갔더니 학생들 중 일부가 데모를 하는 것이 아니고 민중과 더불어 민란을 일으킨 상황이었다.” 보고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과 경호실장 차지철은 부산 사태를 야당과 김영삼의 사주를 받은 소수 사회 불만 세력들과 깡패, 부랑아 등이 소요를 일으킨다고 보고 강경진압을 지시했다.

김재규는 지금의 부산. 마산 사태를 막아내지 못하면 옛날의 4.19는 어린아이 장난과 같은 것이다.”고 말했다.

 

김재규는 평소 남모르게 민주회복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었다. “대통령각하와 나에 대한 소의는 다 끊어버리고 대의를 위해 내 목숨 하나 버린다라는 소회를 밝혔다. 김재규는 자신의 집무실 금고속의 독일제 7연발 발터 권총에 실탄을 채웠다.


오후 4시 50분 


김계원 대통령 비서실장이 김재규 집무실로 들어왔다.

김재규 : 실장님은 지금 사회 공기가 얼마나 험악한지 모르시죠?

비서실장 : 무슨 소리야? 부마 사태는 이제 진정이 됐잖은가?

김재규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오늘 해치워버릴까요?”

김재규의 말에 김계원은 아무 대꾸가 없었다.

 

오후 550. 청와대

박정희는 대통령 부속실 이광형 부관에게 이군, 경호실장하고 저녁 먹고 올 테니까 서재 문 잠그고.. 그런데 인터폰하니까 근혜 없던데, 근혜 어딨나?”

그 때 박근혜는 응접실에서 손님을 만나고 있었다. “근혜보고 먼저 밥 먹으라고 해

마지막이었다. 박정희는 살아서는 다시 청와대에 돌아오지 못했다.

    

저녁 65.

대통령을 태운 슈퍼살롱이 궁정동에 도착했다. 박정희와 차지철 그리고 네 명의 경호원.

 

각하의 대행사











연회장은 여섯 평 남짓한 크기의 온돌방이었다. 흰 종이로 덮인 교자상 위에 몇 가지 음식들이 차려져 있고, 시바스 리갈 12년산 두 병과 선 담배 두 갑이 놓여 있었다. 술을 따라서 마시는 하얀 사기 주전자도 있었다. 박정희는 무슨 술이든 병째로 마시는 것보다 주전자에 따라서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

 

방안에 들어선 박정희는 십장생도가 그려진 여덟 폭 병풍 앞에 놓인 등받이 의자에 자리를 잡고 맞은편 오른쪽에 김계원이 앉고, 그의 왼쪽에 김재규가 앉았다. 차지철은 왼쪽 모서리에 앉았다. 대통령은 맞은편에 앉은 김재규에게 부산 마산에 별일 없지하고 물었다.














, 별일 없습니다.” 박정희는 오늘 삽교천 가보니까 대다수 국민들은 열심히 일 잘하고 있는데, 신민당이나 대학생들은 뭐가 불만이냐 말이야고 하자 차지철은 그까짓 새끼들, 까불면 신민당이고 학생이고 탱크로 싹 깔아뭉개 버리겟습니다고 말했다.

 

저녁 615.

박선호가 운명의 두 여인 심수봉과 신재순을 데리고 궁정동에 도착했다.

대기실에 들어선 두 여인은 두 장의 종이에 각각 자필로 이름을 적고 손도장을 찍었다.

첫째, 각하가 말을 시키기 전에는 먼저 말을 하지 말 것.

둘째, 여기서 보고 들은 것은 일절 외부에 발설하지 말 것.

이를 어기면 어떤 처벌도 달게 받을 것을 서약합니다.

그 다음 박선호는 신재순에게 단독으로 각하를 모시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저녁 630.

잠시 후 경호실장이 안방에서 나오더니 두 여자를 데리고 들어갔다.

심수봉은 대통령 왼쪽, 신재순은 그 오른쪽에 앉았다. 두 여인의 등장으로 술자리의 분위기는 다소 누그러졌다. 하지만 차지철이 요즘 중앙정보부는 뭘 하는지 모르겠어라고 하자 순간 김재규의 얼굴은 일그러지고 분노에 차있었다. 차지철은 재차 그까짓 새끼들 싹 쓸어 버리겟습니다.”고 강경한 어조로 목소리를 높였다. 김재규는 나라가 큰일이라 생각하고 오만방자한 차지철을 해치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저녁 7.

김재규는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와 본관 건물의 귀빈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정승화 참모총장에게 각하께서 오시는 바람에 같이 식사를 못해 미안하다는 양해를 구하고 곧장 2층 집무실로 올라갔다. 준비해둔 권총을 꺼내 바지의 주머니에 넣었다.











김재규는 집무실에서 나와 710분경 연회장 건물앞에서 핵심 측근인 박흥주와 박선호를 불러 거사 계획을 통보했다. “나라가 잘못되면 자네들이나 나나 다 죽는 거야. 오늘 저녁에 해치우겠다. 방 안에서 총소리가 나면 자네들은 경호원들을 몰아붙여. 불응하면 발포해도 좋아.”

 

박선호와 박흥주는 갑자기 머리를 한 대씩 얻어맞은 표정이었다. 순간 그들은 김재규의 지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김재규는 그들이 생각할 틈도 주지 않았다. 박흥주가 주저하자 김재규는 권총을 보여주며 의지를 불태웠다.












박흥주와 박선호는 김재규가 계획을 세워놓고 뭔가 거사를 하려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이 들은 지금 상황으로 볼 때 김재규가 뭔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긴박하게 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박흥주나 박선호는 둘 다 평소 김재규의 판단력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짧은 시간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각하까지입니까?” 박선호가 물었다. “김재규가 끄덕였다. 뜻밖의 통보에 당황한 박선호는 거사를 연기 하자고 했다. 박선호 : 오늘은 경호원이 너무 많습니다. 다음에 하시죠. 김재규 : 안돼. 보안이 샌다. 똑똑한 놈으로 두세 명만 준비 시켜.

김재규의 표정은 단호했다. 박선호 : 그럼 30분만 시간을 주십시오.

두 부하들에게 지시를 하고 김재규는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박흥주는 담배 한 대를 다 피우고 또 하나의 담배에 연거푸 불을 붙였다. 그는 생각했다. ‘이제 내 앞에 세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도망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김재규를 배신하는 것과 나머지는 부장의 명령에 따르는 길이다. 사나이가 도망칠 수는 없고, 배신하는 일을 더욱 못 할 일이다.












김재규 부장은 평소 사리사욕도 없고 늘 올바른 처신으로 부하들의 존경을 받는 분이다.

나라가 잘못되면 다 죽는다. 그는 주저 없이 명령에 따르는 길을 선택했다.

박선호와 박흥주는 최초의 순간적인 주저와 번민을 즉시 극복하고 과단성 있게 행동을 개시한다.

 



박선호는 이 날 김재규를 보좌하여 전광석화 같은 암살 작전을 펴는데 있어서 해병대의 기질을 충분히 발휘한다. 거사 준비를 위해 박선호가 제일 먼저 부른 인물은 이기주였다.









궁정동 경비를 책임지고 있는 이기주는 박선호와 같은 해병대 출신이라 무엇을 시켜도 복종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해병대끼리의 독특한 인간관계 덕분에 이기주는 평소 박선호의 특별한 배려를 받고 있었다. 곧바로 이기주는 실탄을 장전하고 박선호의 명령을 기다렸다.







또 한사람은 육군 중사 출신인 자신의 승용차 운전기사 유성옥 이었다. 유성옥은 성격이 괄괄하고 용감하며 복종심이 강한 자로 즉시 무장을 하고 투입이 되었다. 이들 또한 명령에 이의를 달거나 도망가려 하지 않았다. 이러한 것은 평소 상관과 부하의 신뢰와 존경심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만찬장으로 돌아간 김재규는 자기 자리에 앉았다. 그가 자리로 돌아왔을 때 술자리는 흥겹게 무르익고 있었다. 심수봉은 기타를 치면서 자신을 단숨에 스타로 만들어준 히트곡 그때 그 사람을 불러서 분위기를 뛰우자 박정희는 한곡 더라고 했다.













심수봉은 구성진 목소리로 박정희가 좋아하는눈물젖은 두만강을 불렀다. “잘했어. 그럼 이제 심양이 다음 노래 부를 사람을 지명해봐.” 박정희가 박수를 치면서 심수봉에게 말했다. 심수봉이 보기에 김재규와 김계원은 어딘지 불안하고 편치 않아 보여 차지철을 지명했다. 차지철은 순순히 일어나 우리 민요 도라지를 불렀다. 박정희가 한 곡 더 불러라고 하자 차실장은 나그네 설움을 불럿다. 이 노래도 박정희가 좋아하는 노래였다.

 

저녁 740.

차지철 경호실장의 지명으로 신재순이 노래를 부를 차례가 되었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까지 부르는데 기타가 멎었다. 음치에 가까운 신양의 노래를 심수봉의 기타 반주가 따라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신양이 다시 노래를 불렀다. “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예이 예이 예이..” 김재규가 행동을 개시했다.















오른쪽에 앉은 김계원의 허벅지를 툭치고는 각하를 똑바로 모십시오라면서 권총을 뽑았다.!과 함께 차지철을 향해 첫 발을 발사했다. 23초 후에 총구는 박정희를 향했고 총알이 박정희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오른쪽 가슴 상부에서 들어간 총알은 허파를 지나 오른쪽 등 아래쪽을 관통하고 나왔다. 차지철은 , , 하면서 화장실로 뛰어가고, 김계원 비서실장은 마루로 뛰어 나갔다.

 

저녁 740. 이 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총성 두 방이 어둠이 내려앉은 궁정동의 하늘을 뒤흔들었다. 유신은 종말을 고했다.

 


날카로운 총성이 울렸다.

경호처장 정인형, 부처장 안재송 두 사람은 의자에 앉은 채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안재송이 허리에 찬 총을 뽑으려고 하자 박선호는 꼼짝 마! 총 뽑지 마, 우리 같이 살자.” 박선호는 둘도 없는 친구이자 해병대 동기생인 경호처장 정인형을 향해 소리쳤다.

















정인형과 국가대표 사격선수 출신 안재송은 총을 뽑겠다는 무언의 신호를 교환하자 안재송이 먼저 총을 뽑아 들었고 박선호는 안재송의 가슴을 향해 발사했다. 놀란 정인형도 권총을 뽑아들 찰나에 박선호가 먼저 방아쇠를 당겼다. 세 사람의 삶과 우정이 명령과 임무라는 이름하에 매몰되었다.

 

총소리가 나자 제미니 승용차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박흥주, 이기주, 유성옥 세 사람은 뛰어나와 주방문을 열고 꼼짝 마! 일어나면 죽어하면서 경호원들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박선호와 박흥주는 각자 맡은 곳의 임무를 완수하자 연회장을 향해 뛰었다. 마침 김재규가

방에서 뛰어나왔다. 김재규는 박선호의 총을 낚아채듯 빼앗아들고 다시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김계원은 어정쩡한 자세로 마루 끝에 서 있었다.

 

두 여인









허세가 하늘을 찌르던 경호실장 차지철은 쓰러진 대통령을 방에 남겨둔 채 화장실로 달아났다. 김재규가 총을 가지러 나간사이 경호원을 부르다 다시 들어온 김재규와 마주치자 김부장, 김부장을 애원하다 끝내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졌다. 대통령 호위를 하는 당시의 경호실장은 권총을 차고 있지 않았다.

 

누구보다 대통령 신변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 대통령을 호위해야 할 대통령 비서실장과 경호실장이 도망간 사이 총에 맞아 쓰러진 박정희를 부축하고 있는 사람은 오늘 밤 대행사 요원으로 차출되어 도망가지 않은 두 여인이었다.











게다가 신재순은 그 날 박정희를 처음 보았다. “각하, 괜찮습니까?” 신재순이 물었다. “, 나는 괜찮아..” 박정희가 이승에 남긴 마지막 육성이 되었다.














박정희는 숨이 넘어가기 직전 자신의 생애, 삶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갔을 것이다. 마흔 넷에 박정희를 낳은 어머니의 얼굴, 첫 사랑 이현란의 얼굴, 첫 부인 김호남, 그리고 가난과 망국의 전란시대를 자신과 온 국민이 함께하여 이루어 낸 한강의 기적과 경제 발전..

마지막으로 소복 입고 손짓하는 육영수였을 것이다.

 

끝까지 대통령 각하 곁을 지킨 신재순은 김재규와 눈이 마주쳤다. “그것은 인간의 눈이 아니라 미친 동물의 눈이었다고 기억했다. 김재규는 두 여인의 부축을 받고 있는 박정희에게로 가서 뒷머리에 총구를 대고 발사했다.!하는 총소리가 났고 귀는 멍멍 했고 주위는 조용했으며 방 안은 화약 냄새로 자욱했다.









대통령 비서실장 김계원은 마루에 멍하니 서있었다.

 


, 물 가져와.”

와이셔츠 차림의 구두도 안 신고 양말만 신고 달려 나온 김재규.

곧장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이 식사를 하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 총장, 총장,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정승화가 물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얘기하자는 김재규의 말에 정승화는 김재규가 누군가에게 피습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차를 타고 가면서 김재규는 각하께서 돌아 가셨습니다.” “보안을 유지 해야 합니다.”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김재규의 승용차는 삼일고가도로에 올랐다. 고가도로가 남산 정보부로 가는 길과 용산 육본으로 가는 길로 갈라지는 지점에 다다르자 남산으로 가자고 했던 김재규는 앞자리에 탄 박흥주에게 말했다. “ 어디로 갈까. . 육본. 어디가 좋겠어?” 정 총장이 병역 배치를 하려면 육본으로 가는 게 좋겠습니다.” 라고 하자 김재규도 육본으로 가자고 했다.














여기서 이미 김재규는 실패의 길로 들어섰다. 이 날 김재규는 대통령 살해 행동은 있었지만

그 이후에 대해서는 한 치의 계획도 없었다. 김재규가 이 날 정보부로 가지 않고 육본으로 가기로 결정한 것은 중대 실수였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 날의 대통령 살해가 즉흥적 결심의 결과였음을 이야기해준다.

 

의리의 사나이들












궁정동 사람들.. 이들은 그 날 느닷없는 김재규의 거사에 휩쓸려 짧은 시간에 성공했지만 결국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들은 김재규의 명령 한마디에 대통령을 향해 총을 겨누었고 단 한사람의 이탈자도 없이 거사에 가담했다. 이러한 것은 평소 김재규에 대한 인간적인 존경심이 큰 비중을 차지했고 무조건 들을 수밖에 없는 인연이 이미 쌓여있는 관계였던 것이었다.












이 같은 내적인 공감대 위에 상관의 명령이 떨어지면 목숨 바쳐 수행한다는 것이 궁정동 요원들의 철칙이 거사를 가능하게 했다.

 

박선호는 박정희의 도덕적 파탄을 확실히 목격하게 되었다. 대통령이라는 절대권력을 이용해서 20대의 꽃다운 젊은 여성들을 성적으로 유린해온 것은 어떤 말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범죄 행위다.














박선호는 군법회의 중 군 검사가 왜 가담을 했는지 물으니 "나는 명령을 받았고 그것을 이행한 것이다." 라고 답했다. 다시 군 검사가 잘못된 명령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느냐 묻자 "나는 상관이 명령하면 그 대상이 설사 하나님이라 해도 쏜다. 나는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해 왔다.“ 라고 말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박선호는 법정 최후 진술에서 제가 정보부에 근무하면서 존경하는 김 부장님을 모셨다는 것을 첫째 영광으로 생각하고, 제가 아직까지 원망이나 비관해본 적이 없습니다. 제 부하였던 이기주. 유성옥. 유석술. 김태원. 이들은 아무 뜻도 모르고 나왔고, 제가 지시한 대로 실행했기에 이 부하들에 대해서만은 관대하게 처리해주실 것을 말씀드립니다.” 라고  최후 진술을 마쳤다.














박선호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자기 자신보다 상관과 부하에 대한 대범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박흥주는 대령 진급과 함께 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관으로 임명 되었다. 박흥주는 청렴하고 강직한 군인이었다. 보안사 수사관이 그의 집으로 쳐들어갔을 때 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관이라면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30평대 아파트에 살줄 알았는데 그가 살던 곳은 차도 들어가지 않는 행당동 달동네 꼭대기였다.












이웃 주민들도 그가 중앙정보부에 근무하는지 모르고 따듯하고 아주 평범한 사람으로 알았다. 중앙정보부 수행비서관 재직 당시에도 부모님은 빈민가에 형은 탄광촌 경비를 서고 있었다. 19791220일에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형 집행을 기다리던 박흥주는 곧 중학생이 될 큰 딸, 국민 학교 3학년인 작은 딸과 늦둥이 막내아들이 무척 보고 싶었다. 중앙정보부 수행비서관이 되고 나서 그는 하루도 쉬지 못했고, 거의 매일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가 집에 돌아가면 아이들은 대개 잠들어 있었다.

 

박흥주는 신군부 세력들이 김재규의 비위 사실을 털어놓으면 살려주겠다고 회유했지만 그는 끝까지 김재규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다.











198036.

박흥주는 아침 일찍 일어나 단정한 자세로 앉아 성경을 펼쳤다. 잠시 후 감방 문이 철컥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대령님, 나오십시오.” 박흥주는 직감했다.

눈이 채 녹지 않은 야산.. .. 다시 못 볼 조국 산천을.. 그는 육군 현역이기에 단심으로 사형이 확정됐고 총살형이 집행됐다.















경기도 시흥군 소래면의 한 야산. 박흥주는 총살형이 집행되는 순간 마음속으로 아내와 아이들을 불렀다. “사랑한다, 기억해라. 당신 남편, 너희들의 아버지는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다.” 박흥주는 앞을 바라보면서 목이 터져라 큰 소리로 외쳤다.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만세!”

만세 소리가 끝나자 총소리가 산천을 흔들었다.

 

궁정동 요원들은 365일 눈 감고 잘 때도, 마음에 출동 준비하고 사는 사람들이라 개인적인 시간이 없었다. 일요일도 없었다. 직급이 낮은 부하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운전기사 유성옥은 본인의 결혼 청첩장을 들고 이 날 출근했다. 아들까지 뒀지만 여건이 어려워 식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벼르고 벼른 결혼식이었다. 유성옥은 어릴적 생모는 두 살 때 죽고 중학교 2학년 중퇴한 다음에는 미군 공병대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주워 팔아 생계를 보태는 등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에게 군대는 피난처이자 기회의 땅이기도 했다.















경비원 이기주는 법정에서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다. 박과장님이 저를 신임했는데 목숨을 걸고 무조건 지시에 따랐습니다.” 라고 말했다.

경비원 김태원은 와전옥쇄라는 말을 남겼다. “구질구질하게 살아남기보다는 차라리 장렬하게 죽겠다.” 고 말했다.

 

법정에서 궁정동 사람들은 하나같이 대통령을 시해한 데 대해서 잘못을 느낀다고 했지만 김재규 부장의 명령에 따랐던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후회하거나 상사인 김재규를 원망하는 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재규 부장이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서 노력했고 국민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 이번 거사를 했으며 김재규 부장은 모든 국민이 갈망했던 민주 회복을 10년에서 20년은 앞당겨놓은 분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1980524일 아침 7시 정각에 김재규는 사형집행관실에서 교수형이 집행되었고, 한 시간 후에 같은 장소에서 그의 충실한 부하 박선호가 그의 뒤를 따랐다.

 

에필로그















201610. 박근혜 정부의 권력은 상상할 수 없었던 급박한 속도로 무너져 내렸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 것은 그 권력을 지탱해주던 부하들의 태도이다.








지금 최순실 일파, 당내 친박, 청와대 비서진, 문고리 3인방 등은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전부 쥐새끼처럼 자기 살 궁리만 하지 진정 자기가 모신 상관을 위하거나, 또 상관 자신도 진정 자신을 따른 부하를 마음으로 거두고 챙기지 못하는 것 같다. 한평생 신뢰를 내세웠지만.. 

 

40여년19791026.

그 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부하들은 오늘날 박근혜 대통령의 부하들, 최순실 일파들과는 정말 급수. 인격. 함량 자체가 다른 사람들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그들은 한 번도 김재규를 깍아 내리거나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언제나 상관에 대한 한결같은 애정과 신뢰를 내비쳤다. 김재규가 부하들에게 선택의 기회도 주지 않은 채 그들을 죽응의 수렁으로 끌고 들어간 장본인인데 어떻게 그럴수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김재규는 모든 지시는 내가 내렸고, 부하들은 당시 상황이 그들이 정상적인 판단을 내릴 조건이 아닌 직속상관 자신의 일방적인 명령이었다. 나는 어떤 처벌도 상관없지만. 단순히 상관의 명령을 집행한 박흥주 대령. 박선호 의전과장 등 부하들은 선처를 바란다.“ 는 간곡한 호소를 했다.

 

궁정동 사람들..










이들은 그 날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직속상관에 대한 충성심이 투철했고 의리를 다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다.

 

김재규는 가까운 부하들에게 믿을 만한상관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김병택 대표  news27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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