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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자: 2019/02/06  영남신문
하나회 육군참모총장! 정호용(鄭鎬溶)

전두환, 노태우의 친구이자 하나회의 일원으로서 5.18 당시 특전사령관이었던 정호용(鄭鎬溶) 장군은 1932년 대구출생으로 본관은 연일이며, 호는 목우이다.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전쟁 중 육군에 병사로 입대하여 참전하였으며, 그 뒤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여 1955년 육군사관학교 11기로 졸업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전두환, 노태우와 육사 11기 동기생이며 노태우는 경북고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낸 오랜 친구이자 동창이었고, 경북고-육사 동기로 노태우 대통령의 부인인 김옥숙 여사의 친오빠인 김복동과도 동기이다.

 

이런 인연으로 정호용은 자연스럽게 하나회 조직에 참여하게 된다.

 

이후 육군본부 인사장교를 거쳐 중령으로 재직 중 1965년 육군대학에 입교하여 1967년에 수료하였으며, 같은 해 1967년에는 육군본부 진급계장을 거쳐 수직 이동하여 육본 진급과장으로 승진했다.

 

그 뒤 월남전에 참전하여 육군 제9보병사단 예하대대의 대대장으로 베트남에 파견, 활동하고 귀국하였으며, 1971년에는 육군 대령으로 승진하여 연대장 보직을 두루 역임한 뒤 1974년 특전사 제7공수특전여단이 창설되면서 초대 제7공수특전여단장으로 부임하였다.

 

그리고 1977년 특전사령부(특전사) 참모장을 거쳐 소장으로 진급, 1978년 대구 주둔의 육군 제50보병사단장이 됐다.

 

이어 1979년 전두환, 노태우가 일으킨 12.12 군사 반란 이후 특전사 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정호용은 12·12 사건 때는 대구에서 상경하는 도중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지만 전두환의 동기생이고 하나회이기 때문에 요직인 특전사령관에 임명된 것이다.

 

그는 1980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광주와 서울을 오가면서 공수부대에게서 보고를 받거나 현장 상황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527일 상무충정작전 직전 육군본부로부터 가발, 수류탄 등 군수품을 지원받아 현지의 공수부대에 제공했다.

 

정호용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한 공로로 1981년 대장으로 진급하였고, 그 해 12월 제3야전군사령관이 되었다. 그리고 198312월 황영시 참모총장의 뒤를 이어 육군참모총장에 취임했다.

 

드디어 육사 11기에서 육군참모총장이 탄생한 것이다.

 

198512월 예편한 다음 일해재단 연구위원에 임명되었으며, 1987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초기 수습책으로 김종호의 뒤를 이어 내무부장관에 임명되었다.

 

이어 6월 항쟁과 6.29 선언 이후인 같은 해 7월 국방장관으로 내각에 복귀하여 전두환이 퇴임할 때까지 재임하였다. 짧은 재임기간 때문에 국방장관으로서 눈에 띄는 치적은 없었지만, 해병대 사령부의 재창설이 실현된 것 정도가 그나마 기억될 만한 성과가 있다.

 

정호용이 육군참모총장, 국방부장관에 임명된 것은 동기인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고, 노태우가 정치를 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경쟁자 없이 바로 육군총창과 국방부장관으로 영전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정호용의 군운(軍運)과 관운(官運)은 전두환노태우라는 동기와 친구를 잘 만난 덕분이었다.

 

이후 그는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정치인으로 변신했고 19885월 민주정의당 대구경북지구당 위원장에 임명, 같은 해 13대 총선에서는 대구 지역에서 출마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여소야대 국회에서 제5공화국 비리에 대한 청문회, 5·18 청문회로 사회 여론이 공직사퇴요구를 제기하자 결국 199015일에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이후 명예회복을 위해 자신의 지역구 보궐선거에 다시 출마했지만 정치적 부담을 느낀 노태우 정부의 압력에 의해 후보직에서 다시 사퇴했다.

 

1992년 다시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민주자유당 문희갑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지만 김영삼 정부의 과거청산 작업에 따라 1996년에 다시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관련 혐의로 구속되었다.

 

5.18 검찰 수사 결과 정호용이 5.17 내란에서의 내란모의참여와 5.18 민주화운동 진압 과정에 관여했다는 것이 밝혀졌고, 이에 따라 이듬해 19974월 대법원은 정호용에게 내란모의참여죄, 내란목적살인죄 등으로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이후, 1998년 광복절에 사면 받으면서 석방된 정호용은 별다른 활동 없이 조용히 지내고 있다.

 


김병택 대표  news27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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