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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자: 2019/02/16  영남신문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정승화(鄭昇和)

격동의 시대 1979년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정승화(鄭昇和) 육군참모총장은 1929년 경북 김천 출생으로 본관은 연일(延日)이며, 호는 송산(松山벽옹(碧翁)이다.

 

19477월 조선경비대사관학교 제5기생으로 입학하여, 19484월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소대장과 중대장을 지낸 후 19506·25전쟁 개전 직후 대대장에 보직되어 19519월까지 기계-안강전투, 영천회전, 원산전투, 영흥-함흥-성진진격전투, 현리지구 철수전투 등 각종 대소 전투에 참가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이후 사단 작전참모, 미육군보병학교 고등군사반, 육군대학 교관 등을 거쳐 1956년에 대령으로 진급하여 연대장을 지냈다.

 

196155.16 군사 정변 당시 12사단 부사단장으로 있으면서 사단장과 함께 쿠데타를 지지하여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의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2군 작전처장을 거쳐 그해 8월에 준장으로 진급하였고, 19627월부터 방첩부대장(. 기무사령관)을 지냈다.

 

1963년 민정 이양 선거 당시 군의 부정선거를 철저히 감시하여 군내에 야당후보의 득표가 높아 비판과 찬사를 동시에 듣기도 하였다.

 

이후 그는 1965년 육군 제1군단 부군단장, 육군본부 특전감, 육군 제3군단 참모장, 육군 제3군단 부군단장, 196611월 소장으로 진급, 196612월 육군 제7사단장, 19671월 국방부 인사국장이 되었다.

 

1973년에는 중장으로 진급하여 3군단장을 지냈고, 1975년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 있을 때, 사관학교 졸업 후 5년 근무한 장교를 행정부 사무관으로 특별 채용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197712월에 제1야전군사령관이 되어 19785월에 대장으로 진급하였고, 19792월에 제22대 육군참모총장이 되어 육군의 인재 육성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였다.

 

정승화는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된 10.26 사태가 일어나자 1027일 새벽 4시부로 계엄사령관이 되어 재직 중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의 명령으로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으로 재직 중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된 장소인 궁정동 안가에 있었으며, 이러한 사실이 당시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키는 명목이 되었다.

 

그래서 10.26 사건 후 계엄사령관이라는 막강한 직책에 있으면서도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은 전두환에게 약점을 잡혔고, 전두환의 월권행위도 효과적으로 견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거꾸로 당하고 말았다.

 

197912.12 사태 당시 전두환의 부하 허삼수 등에게 연행되고, 육군참모총장직이 박탈됨과 동시에 육군 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에서 당시 육군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소장 등과 함께 고문을 받은 그는 국방부 군법회의 재판에 회부되어 첫 공판에서 내란방조미수죄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국군보안사령부 서빙고분실에서 대장으로서의 체면을 지키지 않고 온갖 고문을 동반한 수사를 받고, 군사재판의 판결에 의해 대장에서 이등병으로, 자그마치 17계급이나 강등당하는 굴욕적인 처분을 받으며 불명예 전역(강제 예편)해야 했다. 한평생 뼛속까지 군인으로 살아온 그에게는 최악의 처분이자 수치였다.

 

정승화는 국방부 장관의 형량 확인 과정에서 징역 7년형으로 감형되어 군 교도소에서 복역하다 1980610일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으며, 집행유예형이 내려졌지만 813월 전두환 대통령 취임기념 특사로 사면, 복권되었다가 1988년 군적이 회복되었다.

 

이후 정승화 장군은 1987년 대통령선거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인 김영삼 후보의 삼고초려 끝에 1987년 대선 직전 통일민주당의 상임고문 겸 부총재로 전격 등장했다.

 

1988년 총선 때 김영삼 총재의 국회의원 전국구 1번 제의를 받았지만 사양했으며 정계에서도 은퇴를 했다.

 

이어 정승화는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시절 재심판결에 의해 무죄를 선고받고 계급과 명예가 회복되었으며, 몰수된 돈과 군인연금 수급권도 돌려 받았다.

 

이후 1999년 육해공군 및 해병대 장성 출신 모임인 성우회 제6대 회장에 당선되어 쿠데타 피해자 출신 예비역들의 권익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그는 2002612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숙환으로 파란만장했던 생을 마감했다. 향년 74. 사후 국립대전현충원에 예비역 대장 자격으로 안장되었다.

 

정승화 대장은 충무무공훈장, 미국 은성무공훈장, 보국훈장 천수장 등이 수여되었다.

 

대한민국 제22대 육군참모총장 정승화 장군은 전략전술에 뛰어난 지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병택 대표  news27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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