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l  로그인  l  회원가입  l  아이디/비밀번호찾기  l  2020.9.23 (수)
    
 http://www.ynamnews.co.kr/news/14737
발행일자: 2019/02/21  영남신문
비운의 특전사령관! 정병주(鄭柄宙) 장군

3대 육군 특전사령관 정병주는 평생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라 지키는 군인이 정치를 한다는 것을 ...

 

국립묘지에 비석 없는 무덤은 없다. 신원 확인이 안되었으면 무명용사라는 비명의 비석이라도 서있다. 장군 묘역에 있는 한 무덤에는 누구의 무덤인지도 알 수가 없는 유일하게 비명이 없는 무덤이 있다


12.12 군부쿠데타 당시에 신군부측에 저항하다가 부하가 쏜 총탄에 총상을 입고 강제 전역당하여 암울하게 살다 의혹을 남기고 죽은 정병주 장군의 묘비인 것이다.

 

정병주(鄭柄宙) 장군은 경상북도 영주군에서 출생하였다. 경북 영주는 장군을 많이 배출한 고장이다. 그는 조선왕조건국 일등공신인 삼봉정도전의 방계후손이다. 1949년에 육군사관학교 9기로 입학하여 1950년 졸업하였고, 그 해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육군 제1연대 소대장으로서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


군인으로서 정도를 걸은 참다운 군인으로, 5·16 군사정변 당시에는 쿠데타 세력에게 비협조하다가 체포되어 경회루 기둥에 묶여 있다가 영창에 가기도 했다.

 

이후 1967년에 육군 제1공수특전단장을 시작으로 특전사와 인연을 맺었으며 1974년에 육군 소장으로 승진과 동시에 대통령 경호실 차장으로 있다가 그 이듬해인 1975년에 육군 특전사령부의 사령관으로 임명됐다.

 

1979년 전두환이 12·12 군사 반란을 일으키자 장태완 육군 수도경비사령관과 같이 전두환의 군사반란을 막아보려 했지만, 그가 준장 진급에 도움을 준 박희도와 최세창 등 그가 가장 믿었던 부하들에게 배신당했다.

 

그가 자식처럼 돌봐주었고 진급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던 제1공수 특전여단장 박희도 준장은 1여단장에 처음 부임한 197811월에 3명의 무장공비가 1여단 지역을 마음껏 돌아다니다가 복귀에 성공한 사건이 발생해서 이 때문에 보직해임을 당하게 생겼는데, 이 때 정병주 장군이 자존심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직접 이세호 당시 육군참모총장에게 무릎을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서 겨우 보직해임을 모면했었다.


하지만 박희도는 은혜를 갚기는커녕 12.12 당일 무단으로 여단 병력을 동원하여 국방부와 육군본부를점령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 정병주를 배신한 박희도는 전두환 정권하에서 진급을 거듭하여 6년 후인 1985년에는 26대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자 전두환의 군맥 제거 차원에서 바로 보직해임 후 현역 부적합 전역했다.

 

3공수특전여단장 최세창 준장의 경우 전두환의 지시에 따라 부하인 박종규 중령을 시켜 직속 상관인 정병주 소장을 직접 체포하는 하극상을 저질렀다. 쉽게 말하면 자식이 현재의 자리까지 올라가는 데 계속해서 은혜를 베풀어 준 아버지에게 총구를 들이댄 격이다.

 

유일하게 육본 측의 명령을 받고 출동했다가 회군했던 제9공수 특전여단의 윤흥기 준장만이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실제로 9공수 특전여단의 출동은 반란군의 마음을 가장 졸이게 만든 요소였고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쿠데타의 실패와 아군 특전부대끼리의 유혈 충돌이 확실시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윤흥기 준장은 12.12 사태 종료 이후 경질된다.

 

정병주 장군은 전두환의 군사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직속 부하에 의해 총격을 받아 부상을 입었으며 이때 특전사령부 비서실에서 근무하던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이 홀로 사령관 곁을 지키다 흉탄에 사살당하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김오랑 소령에게는 시각장애가 있는 부인이 있었다. 그 부인 백씨는 남편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완전 실명 상태에 빠져 의문사를 당하게 된다. 심지어 그 부부는 한자리에 묻히지도 못했다.

 

정병주 장군은 진짜 군인인 것 같다. 그러나 국가에 충성하고 군의 명령에 복종하고자 했던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12.12 반란을 통해 인생 자체가 망가져 버리게 된다.


1980120, 정병주는 현역부적합 처리되어 육군 소장으로 강제 예편되었다. 이후 정병주 장군은 전두환이 일으킨 12·12 군사 반란에 대한 부당성을 주장하다가 1989년에 목매달아 숨진 채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국가와 국민을 지켜야 하는 군인들이 국가를 찬탈하려는 반란을 막고자 했던 비운의 참군인 특전사령관 정병주.


그는 전형적인 무골에 부하를 아끼는 텁텁한 성품으로 공수단의 대부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정병주 사령관에 대해 누구보다 군인이기를 원했고, 또 누구보다도 순수한 군인이며, 군인으로 보이는 장군이라고 말하고 있다.

 

"명령을 생명으로 여기는 군인들이 상관에게 총질을 하고도 버젓이 활보하는 세상에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그는 참 군인이었다.

 

 

김병택 대표  news2769@naver.com 


기사 출력  기사 메일전송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