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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자: 2018/08/30  영남신문
김지미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은막의 스타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라 불렸던 영화배우 김지미(본명 김명자)1940715일 충청남도 대전부 대덕군 신탄진동에서 태어나 덕성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녀는 1957년 덕성여고 재학 중, 명동에서 김기영 감독에게 요즘말로 길거리 캐스팅되어 황혼열차의 주연으로 데뷔했다.

 

원래 김지미는 미국 유학을 가는 큰오빠를 따라갈 예정이어서 제의를 거절했으나, 감독의 끈질긴 제안으로 영화계에 데뷔하게 되었다. 당시 캐스팅했던 김기영 감독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예쁠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만큼 미인이었다.

 

지금부터 60년 전, 지금은 전설이 되어버린 스크린의 샛별 김지미와 아역 안성기의 데뷔작 "황혼열차"는 명동거리에서 우연히 발탁한 김지미를 진주보다 더한 빛나는 별을 만들었고, 김기영 감독의 친구인 안성기의 부친 안화영이 엉겁결에 데리고 온 아들을 국민배우로 만들었다.

 

이후 별아 내 가슴에로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당시 영화를 연출했던 홍성기 감독과 결혼했는데, 그녀의 나이는 18세였다.

 

홍성기가 무명의 김지미를 처음 발견한 것은 1960년 홍 감독의 전성기로 홍성기 프로덕션 이라는 영화사를 차려 별아 내 가슴에를 연출하면서 김지미를 주연으로 픽업했는데 17만 명의 관객을 동원 해 그 당시 최고의 관객 동원이었다. 김지미도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다.

 

김지미는 1950년대 후반·1960년대 초중반에는 최은희 등의 선배와, 1960년대 중후반에는 남정임, 윤정희, 문희 등의 후배 트로이카와 경쟁을 했다. 1960년대 후반 최은희, 엄앵란, 문정숙 등의 기존 여배우들이 2진으로 물러났으나, 김지미만 살아남아 60년대 트로이카와 경쟁을 한 것이다.

 

1961년 영화계 가장 큰 화제는 김지미 와 최은희 대결이었다. 이는 영화감독 홍성기 와 신상옥 의 대결이기도 했다. 홍성기는 아내 이자 톱스타 김지미를 춘향으로 하여 컬러 영화 춘향전을 만들었고 신상옥 역시 아닌 톱스타 최은희를 춘향으로 내세운 컬러 영화 성춘향을 만들어 설날 흥행적으로 맞대결을 벌인 것이다.

 

1974토지로 제13회 대종상과 파나마 영화제의 여자연기상을 받았으며, 2016년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1992년 이장호 감독의 명자 아끼꼬 쏘냐로 은퇴할 때까지 무려 7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바 있으며, 영화인협회 부이사장·지미필름 창립자·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등을 겸임하며 영화계 안팎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본인도 정확하게 몇 편을 찍었는지 모른다. 무리한 겹치기 출연으로 인해 자신이 어떤 영화를 찍었는지 제대로 모를 정도 혹사 수준의 출연으로 인하여 벌어진 현상이다.

 

그녀는 60년간 어림잡아 700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700가지 인생을 살았다.

‘700가지 인생의 희노애락이 녹아든 여배우의 얼굴.. 그 뜨거운 연기 열정!

 

지금의 배우 김지미는 흐르는 세월에 얼굴에 팬 주름과 희끗희끗한 백발이지만, 그녀는 여전히 매력적인 빼어난 미모의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여배우이다.

 

 

김병택 대표  news27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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