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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자: 2018/03/16  영남신문
도금봉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은막의 스타

요부(妖婦)에서부터 한국적 여인상까지 극단을 오가는 역할을 맡아 폭넓은

연기를 하다 간 은막의 스타!

 

도금봉은 1930년 인천 출생으로 본명은 정옥순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악극단 창공에서 활동하다가 1957년 조긍하 감독의 황진이에서 주인공 황진이 역을 맡아 영화에 데뷔하였다.

 

이후 그녀는 송도의 ''(), 가야금의 ''(), 봉우리의 ''()을 조합해서 '도금봉'으로 활약하게 된다.


영화에 출연하면서 황진이가 살았던 송도의 '()'와 황진이가 즐겨 탔던 가야금의 '()' 그리고 영화계의 우뚝 솟은 봉우리가 되라는 뜻으로 '()'을 취하여 도금봉 이라는 예명을 사용하였으며, 기생 황진이의 요부 캐릭터를 잘 연기하여 호평을 받으면서 세기의 요우(妖優)’ 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후 그대와 영원히, 유관순, 로맨스 빠빠,연산군, 천하일색 양귀비등에서 활약을 하며 주연 및 조연으로 개성 넘치는 연기를 펼쳤다.

 

특히, 1963새댁으로 제2회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 1974토지로 제12회 대종상 영화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전능한 연기자라는 평을 받기도 하였지만, 사생활에서 여러 차례 염문을 뿌리기도 하였다. 당시 동양미들급 챔피언 강세춘과는 짧지만 뜨겁고 정열적인 사랑을 나누었다. 지금은 두 사람 모두 고인이 되었다.

 

1980년대에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활동하였고, 1997년 박찬욱 감독의 삼인조를 끝으로 은퇴하기까지 5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였다.

 

은퇴 후에는 음식점을 경영하기도 하였으나 문을 닫고 말년에는 노인복지시설에서 보내다가 200963일 숨을 거두었다. 건국대학교 병원에서 타계했지만 세상에 알리지 말라는 고인의 유언이 있어서 별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도금봉은 1960년대 1970년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배우로서 능숙한 연기와 관능미를 보이며 대단한 열정을 불태우다 갔다.

 

 

김병택 대표  news27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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