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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자: 2019/02/25  영남신문
로비의 귀재! 정태수

1997
1월 한보철강의 부도와 이에 얽힌 권력형 금융부정 및 특혜 대출비리 사건이 터진다.

 

당시 한보건설은 부도를 내면서 한보철강이 주도했던 당진제철소 설립을 둘러싼 57천억 원 규모의 부실 대출이 드러났고 그 이면에 정태수 회장이 정치권과 금융권에 거대한 로비가 있었던 사실이 밝혀진다.

 

당시 일명 정태수 리스트는 정치권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정치 실세 33명이 추풍낙엽으로 떨어지게 된다.

 

한보사태는 그야말로 기업과 은행 그리고 정치권의 검은 돈 삼각관계의 실체였다. 또한 1997년 대한민국을 절망으로 몰아넣은 IMF 경제 한파의 시작점이었다.

 

1997년 대한민국을 엄청난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던 정태수 회장은 과연 어떤 인물일까...

 

한보그룹을 이끌었던 정태수(鄭泰守) 회장은 1923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정용석과 황맹옥의 1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본관은 해주(海州)이다.

 

그는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진주농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진주농림고를 졸업한 정태수는 1951년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국세청 세무공무원으로 사회 첫 발을 내딛게 된다. 국세청 세무공무원으로 근무할 당시 정태수는 주로 사업장에 세금을 부과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당시 세무공무원 정태수는 기업들로부터 로비를 많이 받아 봤기 때문에 본인이 로비를 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으며, 공무원들의 심리를 잘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해 노하우를 알게 된 것이었다.

 

정태수는 70년대 초반까지 세무 공무원 일을 하다 보니 자기 자신이 세무공무원으로는 양이 안찬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개인 사업에 뜻을 품게 된다. 말단 세무공무원에 싫증을 느끼게 된 것이었다.

 

원래 정태수 이름은 정태준이었다.

 

역술에 관심이 많은 정태수는 본명 정태준을 정태수로 바꾸고 점쟁이로부터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하면 대성을 할 사람이니 사업을 하라는 말을 듣게 된다.

 

점쟁이 말에 솔깃해진 정태수는 그 후로 사업 아이템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등산을 다니던 중 돌을 수집하게 되었는데, 일제 때 폐광 된 몰리브덴 광산을 발견하게 된다.

 

그 당시 얼마 안 되는 돈으로 광산을 헐값에 사들인다. 바로 공무원을 그만두고 197452세의 나이로 한보상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사업가의 길을 걷게 된다.

 

이 사업으로 정태수는 말단 주사보에서 기업의 총수가 되는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정태수가 즐겨 찾았던 역술인은 점을 잘 본다고 소문난 역술인이었다. 그리하여 김종필과 삼성그룹 임직원들도 이 역술인을 찾았다고 한다.

   

사업을 시작하고서도 점쟁이의 말을 들었는데, 그 점쟁이는 정태수에게 땅과 관련된 일을 해야 사업이 번창 할 것이라고 말해 이후 그는 1976한보주택을 설립한 뒤 건설업을 시작했고 일전에 세무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쌓아 놓은 인맥을 적극 활용했다.

 

정태수는 780년대 당시 쓸모없는 땅을 헐값에 사들인 뒤 사업자금을 대출받아서 구로구 일대에 아파트를 건설한다. 이를 계기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땅을 헐값에 사들여 1979은마아파트까지 건설하게 되어 그야말로 대박을 치게 된다.

 

당시 그는 강남의 개발 정보를 미리 알았을 것이며, 은마아파트가 빅히트 치면서 정태수는 2,000억원을 벌어 들인다.

 

정태수가 처음 대치동에 은마아파트를 지을 때는 강남이 전혀 개발이 안 되어 있었다. 게다가 비만 오면 물이 잠기는 상습 침수지역이라는 소문이 나 분양에 상당히 고전을 했다.

 

또한 대부분 광화문, 종로, 을지로에 직장인들이 몰려 있어 대치동에 주택을 가지고 출퇴근을 하려면 버스 편이 아주 안 좋았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정태수의 손을 들어 주었다. 1978년 제2차 석유파동으로 기름 값과 환율이 급등하여 자연히 안정적인 투자처로 부동산이 각광을 받기 시작한다.

 

당시에는 그야말로 건설업의 붐이 일어난 것이었다.

 

정태수는 창업한 지 불과 6년 만에 단숨에 재벌로 성장하게 된다. 이후 그는 강남의 노른자 땅 강남구 수서 지역에 아파트 건설을 추진한다.

 

당시 그 수서대치 지역은 개발이 불가능한 그린벨트 지역이 대부분이었지만 로비의 귀재 정태수는 각계 인사를 찾아다니며 특혜를 부탁한다.

 

드디어 아파트 건축 허가가 떨어지게 된다. 정태수는 세무 공무원 시절부터 배운 것이 하나있다. 뇌물을 주고받을 때는 항상 현금만을 고집했다. 그래야 증거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뇌물을 줄 때 그 금액도 받는 상대방이 생각하는 것보다 항상 금액 끝에 ‘0이 하나 더 붙었다. 다시 말해 통상 뇌물 규모의 10배를 더 준 것이다.

 

아울러 정태수는 뇌물 받은 사람에게는 거의 상시적으로 오래 동안 지속적으로 관리를 했다.

 

정태수는 본인이 세무공무원 말단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어떤 행정적인 절차가 시작될 때 바닥부터 로비를 했다. 반대 의견이 나오지 않도록 정교하게 작업을 잘했다.

 

정태수는 정확하게 누구에게 로비를 하면 되는지를 파악하고 있었다.

 

정태수는 한 마디로 로비의 귀재답게 돈을 받는 상대방이 겁을 내거나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마음을 안정 시켜줬으며, 세심하게 배려해 돈 주는 기술이 아주 뛰어났다.

 

상대가 아무리 거절해도 결국 돈을 받게 만드는 기술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이러한 로비 자금을 전달하는 총책은 회장실 비서 두 여직원이 담당했다.

 

당시 그 두 여직원은 입이 무겁기가 지구의 무게만큼이나 돼 1997년 한보사태 때 법정에서도 모르쇠로 일관하여 더 이상 정태수의 로비 자금을 밝혀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 두 여직원은 자매라고 밝혀진 것이 전부이다.

 

정태수는 ‘86 아시안게임‘88’서울올림픽때 대한하키협회 회장을 맡게 된다. 이것은 정태수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었다.

 

당시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인 ‘86 아시안게임‘88’서울올림픽출전 협회의 회장은 권력층과 가까워 질 수 있는 최적의 기회였다.

 

‘88 서울 올림픽조직위원장이 바로 노태우였기 때문이다. 정태수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대한민국 최고의 차기 권력자와 연결이 된 것이다.

 

이후 정태수는 또다시 역술인을 찾았는데 그 점쟁이가 이번에는 쇠와 관련된 일을 하면 대성 할 것이오.”라고 말했다.

 

정태수는 무슨 일을 하기 전 반드시 역술인에게 물어보고 행동을 했다. 그의 실질적인 참모는 역술인이었다.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이 주택 200만호 건설을 추진하자 건설 붐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자연히 건설에 들어갈 철강재가 많이 필요해 정태수는 부산에 있는 철강회사를 인수하여 한보철강으로 이름을 바꾸고 본격적으로 철강 사업에 뛰어들었다.

 

철근 판매로 엄청난 이익을 올리며 한보는 순식간에 재계 서열 30위 순위권으로 진입하게 된다. 또한 일본 엔고 현상이 일어나면서 국제 철근 값이 폭등을 하게 된다.

 

철강업에 자신이 생긴 정태수는 마침내 한보철강 당진제철소를 준공하게 된다. 굴지의 철강 재벌이 된 것이다.

 

당시 철강업은 포스코가 독점했으나 정태수는 한국 최대의 민간제철소를 꿈꾸었다.

 

철강업의 특성은 고도의 노하우가 필요하며 상당한 전문성이 요구되는 업종이었다. 정태수는 그동안 사업을 하면 뭐든 잘되어 자신감을 얻어 사업의 판을 벌인 것이다.

 

당시 박태준 포스코 회장을 찾은 정태수에게 박태준은 철강에 대해 얼마나 아시오?”라고 물었으며 만일 철강업이 실패하면 국가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게 될 것이오. 그만 두세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태수는 본인의 운()을 믿었다.

 

자금이 문제였다. 제철소에 들어갈 차입금은 2조원에서 2년 만에 5조원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정부와 채권 은행단은 한보철강에 대해 투자를 계속 지원하게 된다.

 

이 금액을 대출하는 과정에서 마침내 정태수의 최고급 로비가 시작된다. 당시만 하더라도 외환위기 이전이라 관치금융의 성격이 굉장히 강했다.

 

금융권은 정치권의 압력에 의해서 대출을 할 수도 있고, 대출을 막을 수 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점점 늘어나는 빚... 더 이상 기대될 곳 없는 한보는 결국 1997년 최종부도 처리된다. 한보가 소유한 22개의 계열사가 문을 닫고 수천 명의 실직자가 발생하게 되었다.

 

또한 한보가 부도나면서 하청업체가 부도나고 그로 인해 주변의 골재업, 운송업, 식당, 술집들이 문을 닫다보니 당시 당진 군민들은 패닉 상태였다.

 

불법과 로비로 쌓아올린 한보그룹이란 성은 마침내 1997년 무너지고 말았다. 한보 철강이 무너지니 대출해준 은행이 무너지고 끝내 국가가 무너지고 말았다.

 

일개 세무공무원 출신의 정태수가 어떤 경로를 통하여 자금을 조성해가며 회사를 하나하나씩 만들거나 흡수하여 한보철강이라는 큰 회사를 중심으로 한보그룹을 단기간에 이루었는지...

 

또한 그 많은 돈을 어떻게 금융기관과 채권자들에게서 얻어냈는지를 서민들은 감히 상상을 못한다. 그를 국회청문회에 수감자의 신분으로 몇 차례를 불러내어 더러운 금전관계를 이실직고하라고 다그치기도 했고 법정에서 죄를 묻기도 했으나 다 밝혀내지는 못했다.

 

휠체어를 타고 마스크를 쓴 그의 모습.

 

정태수 회장의 별명은 자물쇠’ ‘모르쇠이다.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정태수 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사람들은 걱정이 없었다.

 

한 번은 정태수 회장이 검찰에 출석할 때 마스크를 쓰고 나왔는데 이때 내 한테 돈 먹은 사람들 절대 걱정하지 마라, 내 절대 입 안 열께라는 뉘앙스를 풍겨 돈 먹은 사람들을 안심키기도 했다.

 

하지만 또 한 번은 출두할 당시 운동화를 신고 나온 적이 있었는데 이것은 내 한테 돈 먹은 사람들 도망갈 준비를 하라는 뉘앙스를 풍겨 돈 먹은 사람들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1997년 한보그룹의 부도는 다른 기업들에도 거세게 몰아쳐 삼미, 해태, 진로, 대우 등 대기업들의 연쇄부도가 일어났다.

 

결국 한보의 부도는 국가경제를 쓰러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199712월 대한민국은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된다.

 

정태수의 한보그룹은 알맹이가 없는 기업은 성장의 한계가 있어야 하는데 끝도 없는 정경유착을 통해 기업이 팽창했다는 것이다.

 

사업을 로비를 통해 키우겠다는 기업은 결국 도산하게 되어있다. 한두 번 정도는 행운을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 계속적으로 지속하기는 어렵다.

 

정태수 회장의 역술 경영은 무너졌다.

 

19975월 공금횡령 및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병 치료차 해외로 도피 중이던 정태수 회장은 2018121일에 에콰도르에서 사망한 것으로 검찰은 확인했다.

 

세무공무원 출신에서 재벌총수까지 오른 정태수. 그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정치, 경제 등 여러 분야에 뇌물이라면 만사형통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또한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누구한테 뇌물을 줘야 하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한보사태는 정경유착 사건에서 최악의 부패사건으로 어쩌면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에게 큰 교훈을 남겨주었던 사례이다.

 

또한 7, 80년대의 고도성장 속에 감추어진 부끄러움 이었으며 우리가 어떻게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나해답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김병택 대표  news27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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