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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자: 2020/02/28  영남신문
쨍하고 해뜰날! 송대관(宋大琯)

1970년대 너무나 잘 알려진 쨍하고 해뜰날을 부르며 전 국민에게 하면 된다는 정서를 심어준 가수 송대관(宋大琯)194662일 전라북도 정읍 출생으로 본관은 여산이다.

 

송대관은 6.25 전쟁으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갖은 고생을 겪으며 전주서중학교와 전주영생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고교 졸업 후 무작정 무임승차하여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로 상경하여 오아시스 레코드의 사장인 손진석을 만나 그의 일을 도우면서 가수 트레이닝을 받게 되었다.

 

1967년에는 정통 트로트 인정많은 아저씨를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하였으나 크게 주목 받지 못하고 오랜 기간 동안 무명가수 시절을 보냈다.

 

이후 송대관은 데뷔 후 4년째 되던 해인 1971년 직접 작사한 세월이 약이겠지요라는 노래를 부르며 히트를 치게 된다.

 

이 곡이 인지도를 얻어가자 방송 출연량도 증가하여 자연히 송대관이라는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러다가 1975년에 해뜰날(송대관 작사/ 신대성 작곡)이 크게 히트하면서 본격적으로 송대관은 스타덤에 오르며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특히 이 곡은 반복적이며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가사와 경쾌한 맬로디가 돋보이며 당시 남진, 나훈아, 하춘화 등 대세 가수들을 제치며 인기몰이를 하고 1976년 방송국 가요대상 3개를 수상하고 동시에 가수왕에 등극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우연히 라디오에서 이 노래를 듣고는 "그래 노래는 이렇게 신이 나야지!"하며 좋아했다는 카더라가 돌았다. 또 실제로 그 시절 수도권의 공군 모 헌병부대에서는 마치 군가마냥 하루 종일 해뜰날만 틀어댄 적도 있다고 한다.

 

당시 이 노래는 송대관이 자취방에서 새벽에 잠 못 이루고 썼던 글을 하나로 모아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노래이다.

 

마침내 송대관은 10대 가수, 최고 인기가요, 가수완 등 3관왕에 오를 정도로 유명해지게 된다.

 

이후 잘나가던 송대관은 돌연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게 된다. 당시 가수들의 주 수입원은 전국을 도는 공연 행사였다.

 

1980년 처음으로 칼라 TV가 등장하면서 행사가 없어 수입이 줄어들어 더 이상 가수라는 직업으로 가장의 역할을 하기가 어려웠다.

 

이에 송대관은 낯선 땅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송대관은 돈을 벌기 위해 다양한 일들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당시 송대관은 미국에서 샌드위치 가게 6개를 운영하면서 2대의 자동차와 큰 집까지 얻게 되었다.

 

하지만 송대관은 고향이 그리워 약 10년 간 미국 생활을 하다가 1988년에 다시 한국으로 귀국하였다.

 

귀국 후 혼자랍니다를 부르며 인지도를 얻다가 1989정 때문에를 발표하고 나서 20만장의 레코드판매량을 기록하고, 라디오 차트 분야에서 3개월간 1위를 하며 다시금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1990년대 후반 IMF 당시 힘들었던 국민들에게 송대관의 노래는 대중의 마음을 울리는 빛을 내며 다시 주목을 받았다.

 

1998<네박자>, 2003<유행가> 등도 히트시키며 최고의 트로트 가수임을 입증했다.

 

송대관은 히트곡을 연이어 뻥뻥 터뜨리며 현철, 태진아, 설운도 등과 함께 트로트 4대 천왕으로 올라섰다. 재밌는 점은 네 사람이 각각 호남, 영남, 호서 지역을 대표하는 트로트 가수라는 점이다.

 

태진아는 충청도, 송대관은 전라도, 설운도와 현철은 경상도였다. 이렇듯 송대관의 인기는 그가 한창 인기를 누리던 1970년대보다도 더 한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하늘을 찌를 듯 한 인기 절정을 달리던 송대관은 아내의 부동산 투자 실패로 전 재산을 날리면서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된다.

 

2020년 현재는 거의 빚을 다 갚으며 새로운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91031일에는 정읍시 출신의 국민가수이자 정읍시 홍보대사이기도 한 송대관의 명성을 통해 정읍시와 내장산을 전국에 알리고 가요제의 명품화를 통해 정읍시의 이미지 향상을 꾀한다는 취지로 마련된 정읍 송대관 가요제가 처음 개최되어 차세대 트로트 유망주의 등용문이 되기도 하였다.

 

쨍하고 해뜰날을 부르며 당시 가난한 국민들에게 희망을 노래한 가수 송대관은 2001년에 옥관문화훈장을 받았고, 2008년부터 제2대 대한가수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송대관은 딱 좋아라는 노래로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누구나 한번쯤 크게 넘어질 수 있다는 노랫말은 송대관이 부르기에 대중들에게 더 큰 공감을 얻고 있다.

 

 

 

김병택 대표  news27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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