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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자: 2020/02/28  영남신문
시대가 사랑했던 가수! 혜은이

1970년대 중반 요정 같은 외모와 청아한 목소리와 함께 국민 여동생으로 등장한 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수 혜은이(본명. 김승주)1954923일 제주도 제주시에서 출생했다.

 

혜은이는 7살 때 충청남도 대전시 선화동으로 이주하여 자랐으며, 대전 호수돈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혜은이의 아버지는 낙랑쇼의 단장이자 유명 변사였던 김성택씨이다. 이에 자연히 혜은이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영향으로 음악에 심취하게 되었으며, 발레리나를 꿈꿨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친구 보증을 잘못 서 줘서 집안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소녀가장이 되어 돈 벌려고 행사만 쫒아 다니며 힘든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생활전선에서 전전하던 혜은이는 마침내 1975년 길옥윤을 만나당신은 모르실 거야로 가요계에 데뷔하여 폭발적인 가창력과 미모로 혜은이 신드롬을 일어킨다.

 

당시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혜은이의 외모와 가창력, 춤 실력을 두루 갖춰 지금의 아이돌에 버금가는 위상을 갖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혜은이는 1977년에는 2<진짜 진짜 좋아해>, 3<당신만을 사랑해>가 모두 히트하면서 인기 정상에 올랐다.

 

당시 10대 가수상, 가수왕, 최고 인기가수상 등 3사 통합 가수왕을 수상했고 혜은이 신드롬을 일으키며 패션의 선두주자로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아이콘이 되었다. 또한 1집부터 14집까지의 모든 타이틀곡이 1위를 했다.

 

1977KBS 가요대상 최고인기가수상, TBC 여자가수상을 수상했고, 같은해 MBC 연예대상 가수부문상까지 1977년엔 대한민국의 모든 가수상을 석권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혜은이의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노래에 대한 열정은 시대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했다.

 

혜은이는 리듬감 있는 노래는 소화 못할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디스코 풍 "새벽비"까지 흥행을 이루면서 진정한 슈퍼스타가 되었다.

 

또한 1978년 태평양가요제 입상 후 동남아 지역에 화제를 몰고 다녔던 원조 한류스타였다. 1979<3한강교>로 디스코 열풍을 일으켰다.

 

최초의 언니부대를 이끌고 다녔으며 패션, 헤어스타일 등의 유행을 창조하기도 했다.

 

한창 인기 절정을 누리던 혜은이는 1984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업가와 결혼했지만 1988년 성격차이를 문제로 이혼하게 된다.

 

이후 혜은이는 탤런트 김동현과 재혼하게 되는데, 김동현은 초혼이었기 때문에 김동현 집안의 반대가 굉장히 심했지만 김동현의 적극적인 구애로 결국 1990년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결혼 후 김동현이 사업을 부도내며 혜은이가 덩달아 보증까지 서고, 사기 사건도 줄줄이 일으키는 바람에 굉장히 고생했다. 한때 빚이 200억 가까이 된 적도 있다고 한다.

 

혜은이는 이렇게 말했다.

돈이 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다 했어야 했다. 돈 주는 데면 제가 싫은 데 가서라도 노래를 불러야 했다.

 

죽으려고도 했고 한국을 떠나 도망도 가 봤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여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혜은이는 그동안 온갖 고생을 다하며 빚은 거의 다 갚았다고 했다. 혜은이는 전성기 당시 어마어마한 수입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아파트 다섯 채, 현찰만 30억원 정도 있었다"며 과거를 회상하기도 했다.

혜은이는 아직도 가수라는 이야기에 눈이 반짝인다고 한다. 작고 가냘픈 국민 여동생에서 한 시대의 아이돌로도 불렸던 그녀의 식지 않는 열정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시대가 사랑했던 국민 여동생 혜은이는 늘 새로운 도전과 함께 한 시대를 이끌었던 가수였다.

 

 

 

김병택 대표  news27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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