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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자: 2020/03/02  영남신문
동숙의 노래! 문주란(文珠蘭)

60,70년대에 가요계를 평정했던 매혹적인 저음의 가수 문주란(文珠蘭)1949년 부산광역시 출생으로 본명은 문필연이다.

 

딸만 다섯인 집안의 막내였던 문필연은 아버지가 이제 딸을 그만 낳았으면 해서 마칠<>, 연꽃<>이 합해진 이름이었다.

 

문주란은 어릴 적 아버지가 부산 서면에서 큰 운수사업을 해서 유복하게 살 수 있었다. 학창시절 그녀는 공부를 많이 해서 외교관이 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단란하던 가정은 문주란이 다섯 살 때 엄마를 여의고 아버지 사업마저 힘들어지면서 가세가 기울게 된다. 그러다 보니 공부를 많이 하기 어렵게 되었다.

 

1965년 중학교 2학년 때 어느 날 친구들과 부산 MBC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노래 경연대회에 응모를 해 토니 달라라의 라노비아를 불렀는데 피아노 반주를 하던 사람이 깜짝 놀라 1등을 했다.

 

당시 그 프로그램에서 7주 연속 1등을 한 사람에게는 서울시민회관(세종문화회관 전신)에서 열리는 본선 출전 자격이 주어졌지만 문주란은 6주 연속 우승하고도 미성년자라 본선 무대에 서기 어려웠기 때문에 7주 연속 1등은 놓치고 만다.

 

하지만 이 계기로 문필연이라는 이름이 제법 알려지게 되었다.

 

문주란은 중학교 3학년이던 1966년에 서울로 전학을 가서 하숙을 했으며, 서울시민회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보슬비 오는 거리를 불러 객석에서 앙코르를 받게 되었다.

 

이 장면을 지켜본 당시 가요계 유명 인사인 동백아가씨를 작곡한 백영호 그리고 임종수 지구레코드 회장님으로부터 큰 관심을 받게 되었다.

 

또한 [아리랑]이라는 잡지를 제작하는 전우 대표가 가냘프지만 바람 많은 제주도에서 예쁘게 꽃망울을 터뜨리며 살아가는 문주란이라는 난초가 있는데 참 예쁘다. 앞으로 넌 문주란이야라고 예명을 지어 주었다.

 

이후 문주란은 19661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동숙의 노래'라는 곡으로 파격적인 데뷔를 하였다.

 

하얀 드레스에 보랏빛 조명이 떨어지면 미동도 않은 자세로 그 커다란 검은 눈망울만 깜박이며 <동숙의 노래>를 불렀다.

 

모든 극장 쇼에는 문주란의 이름과 사진이 큼직하게 들어가야 흥행할 수 있었다. 단 한 시간의 정식가요 수업을 받은 적도 없지만 타고난 재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여성스럽고 귀여운 인상과는 대비되는 굵고 깊은 저음이 그녀의 특색으로, '국내 최저음 여가수', '어른 목소리 내는 아이' 등으로 화제를 모으며 일약 스타가 되었다.

 

당시 문주란의 등장은 그 뒤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 10대 가수의 붐을 불러 왔다.

 

<동숙의 노래>로 문주란은 1967년과 1968년에는 MBC에서 주최한 MBC 10대 가수 가요제의 10대 가수에 선정되었으며, 1972MBC 10대 가수 가요제에도 선정되었다.

 

이후 문주란은 분위기 있는 저음의 매혹적인 목소리로 <공항의 이별>,< 돌지 않는 풍차>,< 당신이 있으니까>,< 백치 아다다>, <타인들>, <꼭 필요합니다>, <내 몫까지 살아주>,<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등 절절한 가사와 귀에 감겨드는 노래를 부르며 히트를 쳤다.

 

1981년에는 일본에도 진출해 활동하기도 했고, 1982년에는 일본 동경음악제에서 최우수가창상을 수상했다.

 

특히, 1980년대 KBS의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의 배경음악에 수록된 누가 이 사람을 (남과 북)을 불러 애타는 이산가족들의 애환을 달래며 히트했다.

 

문주란의 창법은 상당히 굵고 낮은 음성이 특징이다. 리즈 시절 그녀를 대표하던 별명이 바로 국내 여자가수 중 음이 가장 많이 내려가는 가수. 무려 0옥타브대의 저음을 쉽게 소화하며, 때문에 목소리만 듣고 남자가수로 오해하는 경우도 꽤 많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저음이 이미 10대 초반에 완성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돌지 않는 풍차, 타인들, 동숙의 노래, 나야 나 등을 들어 보면 그 특징이 잘 나타난다.

 

하지만 발성이 워낙 안정적이고 탄탄한 가수라 저음뿐만 아니라 고음역대도 안정적으로 소화한다.

 

문주란은 이렇게 말했다.

예전부터 그렇게 살아왔지만, 일흔 가까운 나이가 되고 보니 이제는 돈도 사람도 큰 욕심이 없어요. 하고 싶은 것 하고, 먹고 싶은 것 먹다가 조용히 떠나고 싶어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3곡을 다시 불러 음반을 내는 게 마지막 소원이자 목표라고 말했다.

 

 

 

김병택 대표  news27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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